2008년 7월 9일 수요일

영원한 안식과 주일-유해무

영원한 안식과 주일』
유해무 

성도들은 매주마다 한 번씩 주일을 지킨다. 주일을 지킬 때마다 성도들은 긴장한다. 그러기에 제4계명의 명령인 안식일, 주일 성수는 항상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좋은 안내서를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여기에 좋은 경건 서적이 한 권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게다가 우리 고려파는 주일 성수에 대하여 큰 부담을 가지고 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주일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이도 있고 치리를 당한 이들도 여럿 있다. 또 전에 교장으로서 고려신학교를 이끌었던 어떤 분은 바로 ‘주일 성수’의 문제로 교단을 떠나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고려파에는 ‘국기 경례 반대’와 더불어 ‘주일을 잘 지킨다’는 평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대개 주일날 시행되는 각종 국가고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어느 시점부터인가는 이 당당한 자세에 ‘율법주의’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고, 이제는 이 굴레를 벗어 던지는 것이 신앙의 용단인 양 득세하고 있지는 않은가. 특히 중고등부 학생 신앙 운동은 여느 다른 교파들의 중고등부와 마찬가지로 대학 입시의 중압감으로 인하여 피폐되고 있다. 이것은 율법주의에 대한 무법주의적인 대처라 하겠다.


차제에 최낙재 목사님이 안식일과 주일에 대하여 아주 좋은 책을 펴내셨다. 최 목사님은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1986년에서 1989년까지 안식일과 주일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였고, 이것을 묶어서 출판하였다. 하나님 나라, 혼인, 구원 등에 대한 책을 낸 저자가 이번에는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잘 해명하여 한국 교회에 내놓았다.


저자(설교자)는 제4계명의 근본 뜻이 이미 창세 때부터 주어졌음을 지적하고, 창세기 2:1-3을 본문으로 삼아 첫 제목을 ‘영원한 안식’이라고 붙였다. 저자는 안식이 창조 때에 주신 명령임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6일 창조의 대업을 마치고 쉬신 것은 완성된 창조만을 회고하면서 쉬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창조의 목적이 완성될 것을 경영하셨고 내다보시면서 쉬신 것이다. 창조시에 종말의 완성을 다 아신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벌써 창조의 일곱째 날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다”(16쪽). 이처럼 창조의 대업을 영광스럽게 이루신 하나님은 사람에게도 이 안식에 참여토록 사랑으로 초청하셨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일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영원한 안식으로 초대하신다(마 11:28-30).


저자는 마태복음 12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간에 있었던 안식일 논쟁을 비교적 길게 다룬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율법의 본의는 망각하고 법조문에만 사로잡혀서 율법주의적으로 안식일을 이해한 바리새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비, 인애를 베푸는 인자가 곧 안식일의 주인임을 강조하여 드러낸다. 다른 율법과 마찬가지로 제4계명도 ‘성전보다 큰 이’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저자는 특히 히브리서 3장과 4장을 집중적으로 주석하고 해석한다. 여호수아가 이룬 가나안 입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는 안식이었으나, 시편 95편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이 최종 안식이 아니고 아직도 들어갈 안식이 있음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촉구하였다. 시편 95편을 인용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신약의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이 안식에 들어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 근거하여 저자는 가나안과 안식일이 지니고 있는 ‘영원한 안식’에 대한 예표의 기능을 부각시킨다. 이처럼 저자는 아예 창세기 1-2장을 기독론적으로 다시 읽으면서 안식일이 지니고 있는 ‘종말론적 예표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참여함에 인생의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이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노예가 아니라 출애굽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은 자유자로서 6일 동안 열심히 일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일에는 쉼으로써 이 영원한 안식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있는 믿음을 과시해야 한다. 영원한 안식을 표상하는 안식일에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안식과 방불하게 지내는 것이 주일을 가장 잘 지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믿음과 소망이 필요함을 저자는 바르게 지적한다.


이 책은 보통 설교집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이 책은 주석적으로 아주 풍성한 책이다. 구원 역사의 처음과 마지막을 다 총괄하면서 안식이 성도에게 주는 자유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일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고역이 아니라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방편임을 강조한다(118쪽). 저자는 안식일과 주일을 서로 대치시키지 않고 참된 안식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주일에 주어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참된 안식을 향하여 일을 통하여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과 환희 등을 크게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율법주의적인 주일 성수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하여 이 책이 현금 유행하고 있는대로 주일에 대하여 방종적인 자세(反法主義)를 조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36쪽). 저자는 예수님 당시의 율법주의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하면서, 안식일의 의미를 본래의 의도대로 지키려면 율법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하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일해야 함을 강조한다(211쪽).


본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창조에 안식이 결합됨으로 창조 자체가 이미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고 있음을 주석적으로 잘 밝혔다. 이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저자는 안식이 복음이요, 믿음이 아니고는 안식을 누릴 수 없음을 바르게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안식일을 지키는 데에서 우리는 좋은 본보기를 얻게 된다. 일을 성취하시고 만족을 누리시는 아버지와 아들의 풍요로운 안식 안에서 성도들은 안식과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게 된다. 일을 돌아보면서 향유하시는 하나님의 안식을 저자는 시편의 여러 말씀들을 인용하여 표현한다(111-112쪽). 이처럼 시적 표상으로 풍요롭게 표현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이 우리의 삶과 일의 목적인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은 누구나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설교가 아니다.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궁구하고 교회를 위하여 기도로 준비하고 있음이 책에 깊숙이 배어 있다. 이 책은 또한 안식과 연관된 안식일과 주일에 관한 성경의 교훈이 얼마나 풍부하며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지를 잘 보여 준다. 물론 때로는 어려운 단어들도 나온다. 그럼에도 저자는 말씀을 사모하며 음미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씀의 풍요성을 제공한다. 저자는 주일을 지키는 실천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51쪽 등). 말씀에 깊이 젖을 때 실천적인 지혜는 절로 주어짐을 은근하게 말하는 것이리라.


이처럼 안식에 관한 성경의 계시를 풍요롭게 설명한 책을 출판한 저자에게 깊은 감사와 축하를 보내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출처 : 이 글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지 <기독교보> 359호(97. 11.15 발행)
유해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저서 『개혁교의학 - 송영으로서의 신학』(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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