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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원료사료 중 일부 품목의 할당관세 폐지가 축산업계에서는 꽤나 큰 이슈이다. 수입되는 원료사료의 할당관세가 폐지되면 일반 품목들과 같은 세율의 관세가 적용이 되어 이는 결국 농후사료 가격의 인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데 이에 대해서 정부측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즉 사료가격을 내리지 않기 위한 사료회사들의 변명거리의 하나로서 언론들과 담합하여 이 문제를 이슈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 요지인듯 하다.
무엇이 진실인게냐??
사실 그 동안 축산언론들과 사료회사들의 행태를 보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겠다 싶다. 얼마 전 사료가격이 소폭인하되었을 때 이에 관한 축산신문의 기사는 가관이었다.
사료회사 얘네들 엄청 힘든데 너희 축산농민들 생각해서 제살깎아가며 인하한다
는 식의 보도에 달렸던 리플들이 어쩌면 농민들의 진실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하루가 멀다하고 사료가격이 오를 그 때와 비교하면 인하요인은 워낙 많은데 실제 인하폭은 참새눈물만큼 이었다.
나도 사료회사에 있어봤지만 축산경기가 아무리 바닥을 치더라도 사료회사는 항상 건승한다. 그거슨 진리.
아래는 이번건과 관련된 농민신문의 기사 전문.
사료원료 할당관세 축소땐 농가 피해’ 기사 사료업체와 언론이 담합해 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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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진실이 왜곡되는 세상-언론의 폭력
젖소 수란우 분변 상태관리로 수태율 향상
일본, 젖소 수란우 분변 상태관리로 수태율 향상
젖소 수정란 이식시 수란우의 분변 상태를 관리하면 수태율이 높아 질수 있다고 일본 후쿠이현 축산시험장이 발표하였다. 이들은 수정란 이식시 수란우 사양관리 형태가 수태율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일반농가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수란우의 분변상태와 수정란 수태성적간의 상관을 조사하였다. 이들 조사결과 분변의 상태를 정상, 연변, 설사로 구분시 연변을 보일수록 수태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분변중 섬유량의 과다 유무, 곡류 잔류물의 유무는 수란우 수태율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수정란 이식시 수란우 분변 연도가 높은 경우는 부적절한 사료급여 여부, 사료급여량, 사료중 분해성 단백질과 비섬유성 탄수화물의 균형, 급여회수 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일본 농업신문 6월20일자)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탱탱볼 리프팅
평소 집에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한데 공 차러 나가기는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럴때 가지고 노는 500원짜리 탱탱볼~
다른 공에 비해서 워낙 가벼우니 터치감이나 여러가지가 실제 축구공과는 비교도 안되게 싱겁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다. :)
공이 바닥에 튀어도 아랫집에 그다지 큰 소음이 나지도 않을것 같은 점도 큰 장점.
탱탱볼 리프팅은 생각보다 어렵다.
실제 공보다 워낙 가벼워서 적당한 임팩트 감각을 익히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처음에는 실제 공 처럼 생각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왠만큼은 한다.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이라 화질이 안습이다.

쿼터값 지못미... T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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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 쿼터값 하락 (2009/06/26 09:31: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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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값 지못미..T T
된장 개나리 신발끈...
사료값이 또 오르게 생겼다.
기사를 읽다보니 울화통이 또 치민다.
MB..... 디질래연?????
| 사료원료 할당관세 ‘정부 원안대로’ (2009/06/26 09:35: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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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5일 목요일
똥파리
오랜만에 참 맘에드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독립영화라고 하는데 무척이나 완성도가 높다.
똥파리.
주인공 역할의 배우는 바로 이 영화의 감독이라고 한다.
캐릭터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실제 건달이라고 해도 믿겠다.
그리고 연기들이 정말이지 자연스럽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16강
관람평을 적기 전에 꼭 언급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리 한국에서 축구보다 야구가 인기가 많다고는 하나
어째서 녹화방송 조차 야구중계때문에 제 시간에 해주질 않는거냐???
K리그 팀들이 3 팀이나 다른나라의 클럽팀과 자웅을 겨루는 챔피언스리그경기를
치루었는데 어떤 방송사에서도 생중계를 해주지 않았다.
S방송사와 X방송사에서 그나마 밤 10시에 녹화방송을 해준다고 했었는데
그나마도 프로야구경기가 연장되는 바람에 한시간 쯤이나 늦게 중계가 되었다.
정말이지 너무 어이없고 화나는 일!!
평소에 리그경기는 중계를 실시간으로 해 주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새우젓만한 개나리. 신발끈....
하지만.
이러한 노여움에도 불구하고.
어젯밤 새벽 3시가 다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던 노고에도 불구하고.
어제 세 경기 중 두 경기는 그야말로 재미있었다.
두둥~~~
먼저 포항과 뉴캐슬의 경기.

경기 전체적으로 포항이 완전히 압도하는 경기였다.
PK 득점으로 시작된 골폭풍이 그야말로 허리케인 수준이었음.
가장 돋보였던 선수는 누가 뭐래도 최효진과 데닐손
최효진의 실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제는 유난히 훨훨 나는듯 했다.
뭐지? 팬이될것 같은 이 느낌은?? :)

4:0 이 되고나서 더 이상 이변은 없을듯 하여 S방송사로 채널을 돌려 FC서울 경기를 봤다.
근데 오늘 아침에 스코어를 보니 6:0.
무척이나 통쾌했던 경기.
송진형의 플레이를 오늘에서야 제대로 봤는데
흠... 과연 소문대로 잘하긴 했다.
수비수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장면이 참 인상깊었다.
두 번째로 FC서울과 가시마의 경기

포항과 뉴캐슬의 경기가 포항이 일방적으로 압도하며 통쾌하게 이겼던 경기라면
이 경기는 경기 내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경기끝나기 직전까지 이어진 경기였다.
전후반 2:2로 동점
연장들어가서 득점 없이 끝나고
결국 승부차기 까지 갔는데
16강전은 단판승부이다 보니 이런 재미도 있더이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졸이며 PK를 지켜보는 재미를 느꼈다.
김호준 골키퍼의 선방이 빛났던 경기.
마지막으로 수원과 나고야.

이 경기는 솔직히 제대로 안봤다.
FC서울 경기랑 시간이 겹치는 데다 요즘 수원의 전력으로 봐서 이기기 힘들것 같아서 이다.
결과는... 졌다. 2:1
경기를 중간중간에 짬짬히 봐서 별로 할 말은 없다만
결과만 놓고 봐서는 나름 분전한것 같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가 왜 이렇게 인기가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난 리그경기만큼이나 재밌다고 생각하는데 축구팬들 조차 별 관심이 없으니
방송사에서 저따위 말도안되는 행태를 보이는게 아닐까?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포항이나 서울 중 하나가 우승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왠만하면 포항이 우승하는게 더 기쁠지도.. 응???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취미 로서의 축구
취미로서 축구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것 같다.
직접 축구를 하면서 땀흘리는 방법이 가장 고전적일테고
유럽의 유수한 축구스타들의 현란한 경기를 보는 것도 방법이 될테고
각종 축구 용품들에 녹아있는 기술력을 하나씩 체험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듯 하다.
더불어 축구 게임(위닝, 피파)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축구를 즐길 수 있다.
포스팅을 하나 하고 싶긴 한데 마땅한 주제가 없어
예전에 찍어두었던 내 축구 용품들을 올려본다.

짝퉁 무늬다스 AC밀란 레플.
주로 풋살에서 사용하는 나이키 복숭아뼈 보호대.
아디다스 프레데터 신가드
런사커 넥워머
나이키 머큐리얼 벨로찌 FG.
그 외 자잘한 용품들이 더 있긴 하나 귀차니즘에 빠져 요것들만 찍어봤다.

짝퉁 무늬다스 AC밀란 레플에 찍혀있는 마킹.
힙합가수 Deegie를 따라한건 아니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고등학교때 부터 15년 정도
쓰고 있는 내 닉네임이다.

요것은 위닝 속의 나.
얼굴이 합성이 되니 실제 내 얼굴을 가진 플레이어가 위닝속에서
토레스를 능가하는 리버풀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가 되어 있다.
ㅎㅎㅎㅎ
근데...
너 나이살 먹고 지금 이러고 있는게냐???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국산원유 유제품 생산 늘려야
이미지출처 : www.textcube.com
시유 소비 감소 반면 요구르트·치즈 등 시장 확대
요구르트와 치즈가 시유소비가 줄어드는 유제품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이들 제품의 국산 원유 활용성을 높여야한다는 주장이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시유소비량은 2004년 178만1221톤에서 2008년 170만2294톤으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치즈소비량은 2008년 7만2062톤으로 2004년 6만3889톤 대비 약 12% 증가했다. 발효유 시장에서는 떠먹는 요구르트인 호상발효유 소비량이 2008년 16만5643톤으로 2005년 15만5756톤 대비 약 6% 증가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향후 유제품시장에서 시유소비는 줄어들지만 소비자들의 입맛이 다양해지면서 요구르트, 치즈와 같은 고급유제품에 대한 소비는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증가 현상에도 불구하고 소비량 대부분을 수입이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국산 원유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석진 영남대학교 교수는 “향후 국제화에 따라 유제품 수입이 확대될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수입유제품이 들어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민경 건국대학교 교수는 “국산원유를 활용해 질좋은 요구르트와 치즈를 생산한다면 국내원유수급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2009. 06. 22일자>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스타 뉴 폴라리스(New Polaris) 2000 알파
평소 폴라리스 시리즈 축구공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공이 있어서 새로이 구입하는 것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에
매번 강림하는 지름신을 번번히 외면해 왔었다.
지금까지 나와 잘 놓았던 무늬키 머큐리얼 비어 보급형 축구공...

이 사진에는 그나마 상태가 좋게 나왔지만 지금은 거의 걸레공이 되었다.
더군다나 공을 찰 때 마다 발목이 너무 아파 늘 불만이었는데...
며칠 전 새로운 공을 질러야 겠다고 드디어 마음을 먹고 후보군들을 탐색하기 시작.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축구공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1. 매치볼 : 단연 최고 성능이지만 가격도 최고다. 막 차기 너무 아깝다.
2. 레플리카볼 : 일명 무늬커. 절대 비추... 내가 쓰던 저 공 종류들...
3. 보급형 축구공들 : 스타 폴라리스 계열, 낫소 돌파 태극... 등등
가격대비 가장 추천되는 제품들.
매치볼과 보급형 축구공 중에 고민을 좀 했더랬다.
요즘 옥이네 등에서는 아디다스 팀가이스트 매치볼이 7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근데 봉제불량 등... 안좋은 소리들이 많이 들려서 찝찝하던 차...
그래서 매치볼은 접고
보급형 축구공들 중 가격대비 성능 면에서 축구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축구공을 꼽으라면
1. 스타 폴라리스 계역(1000,2000,3000....)
2. 낫소 돌파 태극
3. 낫소 돌파 프리미엄.
대충 이정도인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폴라리스 2000을 택함.
폴라리스 1000과 큰 차이는 없다고 하나 가격이 별로 차이나지 않고 알 수 없는 믿음(?)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각설하고.
주문한 폴라리스 2000이 드디어 도착했다.

2009년형 부터는 폴라리스 2000 알파 라는 이름으로 색상도 약간 변경되어 출시된단다.
제품에는 공 가방(배낭형태)과 공기주입 어댑터가 포함되어 있고 품질보증서는 진짜 간단하게 스티커로 붙여져 있었다.
외관을 잠시 살펴보자.

비닐 벗기고 찍은 사진...
알흠답군하~ 캬~~

로고 부분 확대 사진.
보일랑가 모르겠지만 음각으로 되어 있어 고급스럽다.
그리고 표면에 라텍스 코팅된게 사진상에서는 확인이 잘 안되는데 직접 보면 매우 고급스럽다.

New Polaris 라는 문구가 확실히 찍혀있다.
퇴근해서 도착해 있는 공을 확인하고 저녁먹고 애들 데리고 아파트 놀이터로 나갔다.
애들이 모래놀이 하는 동안 리프팅을 해봤는데...
뭐지? 이 혁신적인 느낌은???
무늬키 공으로 리프팅할 때는 공이 너무 딱딱해서 몇 개 못했는데 단언하건데 한 20% 정도는 더 할 수 있다.
공이 발등에 임팩트될 때 그 부드러움은 말로다 형용할 수 없다.
암튼 느낌이 너무 좋았다.
다시 애들 데리고 들어와 씻기고 얼른 재우고 난 또다시 공 들고 집 근처 대학 운동장으로 고고싱~
프리킥을 찼는데... 느낌은...
지금까지 무늬키 따위의 공으로 어떻게 공을 찼을까??
완존히 새로운 세상 이었다.
지금은 거의 500% 만족하고 있다.
받은지 이틀밖에 안되서리 아직 단점은 모르겠다.
아끼고 아껴서 고이 차야겠따~~ㅎㅎ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
어제 집사람이 시립도서관에서 유시민의 책 "후불제 민주주의"를 대여해 왔다.
프롤로그 부분만 잠시 읽어보았는데 역시나 명필가다운 느낌이었다.
책과 유시민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다가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이야기가 잠시 나왔었는데
일전에도 기가막힌 명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어떤 글인가 싶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과연 소문대로였다.
유시민 카페 www.usimin.net 에서 퍼왔음을 밝히며
아래에 그 전문을 옮겨본다.
항소이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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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 : 경상북도 월성군 ○○면 △△동 성명 : 유시민 |
요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애소(哀訴)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본 피고인으로서는 정의로운 법률이 공정하게 운용되는 사회에서라면 양심의 명령이 법률과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에 서게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집단과 인간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현재의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수준의 반영인 동시에 미래의 그것을 결정하는 규정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행법이라 함) 위반 혐의로 형사소추되어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본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이 우리 사회의 어떠한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상태의 반영이며 또 미래의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규명함과 동시에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책임을 명백히 밝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젊은 대학생들이 동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을 폭행하였다는 불행한 이 사건으로부터 “개똥이와 쇠똥이가 말똥이를 감금 폭행하였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흔하디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항소이유서는, 부도덕한 개인과 집단에게는 도덕적 경고를,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법적 제재를, 그리고 거짓 선전 속에 묻혀 있는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하는 청원서라 하겠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은 법률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이 글 속에서 ‘책임’ ‘의무’ ‘과실’ 등등의 어휘는
특별한 수식어가 없이 사용된 경우, 그 앞에 ‘윤리적’ 또는 ‘도덕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것으로 간주하여 무방합니다. 그리고 본 피고인이 특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에는 윗점을 사용하였습니다.
본 피고인은 우선 이 사건을 정의(定義)하고 나서 그것을 설명한 다음 사건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현정권(본 피고인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비추어 제 5 공화국이 합법성과 정통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정부대신에 정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각자가 취한 행위를 분석함으로써 이 글의 목적을 달성코자 합니다.
이 사건은 학생들에 의해서는 ‘서울대 학원 프락치사건’으로, 정권과 매스컴에 의해서는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으로 또는 간단히 ‘서울대 린치사건’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명칭의 차이는 양자가 사건을 보는 시각을 전혀 달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본 피고인이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사건을 정의하자면 이는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이 고조된 관악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네명의 가짜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입니다.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상태’를 해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4월 민주혁명을 짓밟고 이 땅에 최초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5·16 군사쿠데타 이후 4반세기에 걸쳐 이어온 학생운동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혈사(血史)와 아울러 가열되어온 독재정권의 학원 탄압사를 살펴보아야 할 터이지만, 이 글이 항소이유서임을 고려하여, 1964~65년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소위 6·3사태), 1974년의 민청학련 투쟁, 1979년 부산마산지역 반독재 민중투쟁 등을 위시한 무수한 투쟁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그치기로 하고 현정권의 핵심부분이 견고히 형성되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쿠데타 이후 상황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사회적 갈등·정치적 비리·문화적 타락은 모두가 지난 날의 유신독재 아래에서 배태·발전하여 현정권 하에서 더욱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들입니다. 현정권은 유신독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와 민주회복을 낙관하고 있던 온국민의 희망을 군화발로 짓밟고, 5·17 폭거에 항의하는 광주시민을 국민이 낸 세금과 방위성금으로 무장한 ‘국민의 군대’를 사용하여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피묻은 권력입니다. 현정권은 정식출범조차 하기 전에 도덕적으로는 이미 파산한 권력입니다.
현정권이 말하는 ‘새시대’란, 노골적·야수적인 유신독재헌법에 온갖 화려한 색깔의 분칠을 함으로써 그리고 총칼의 위협아래 국민에게 강요함으로써 겨우 형식적 합법성이나마 취할 수 있었던 ‘새로운 유신시대’이며, 그들이 말하는 ‘정의(正義)’란 ‘소수군부세력의 강권통치’를 의미하며, 그들이 옹호하는 ‘복지’란 독점재벌을 비롯한 ‘있는 자의 쾌락’을 뜻하는 말입니다.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 발전을 위하여 ‘비효율적인’ 각종 민주제도(삼권분립, 정당, 노동조합, 자유언론, 자유로운 집회결사) 등을 폐기시키려 하는 사상적 경향을 우리는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파시스트 국가의 말로가 온 인류를 재난에 빠뜨린 대규모 전쟁도발과 패배로 인한 붕괴였거나,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에조차도 그 국민에게 심대한 정치적·경제적 파산을 강요한 채 권력내부의 투쟁으로 자멸하는 길뿐임을 금세기의 현대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찌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은 전자의 대표적인 실례이며,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등장했던 칠레·아르헨티나 등의 군사정권, 하루저녁에 무너져버린 유신체제 및 지금에야 현저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따위는 후자의 전형임에 분명합니다.
국가는 그것이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구성원 모두에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지난 수년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며 투쟁한 노동운동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땅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양심적 종교인, 진실과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한 언론인과 교수들, 그리고 민주제도의 회복을 갈망해온 민주정치인들의 선봉에 섰던 젊은 대학인들은,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며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반민중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아래서라면 단 한 주일도 유지될 수 없는 현 군사독재정권이 그토록 존귀한 우리 조국의 대리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보다 민주적인 정부를 가질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정권은 12·12 군사쿠데타 이후 4년 동안 무려 1,300여명의 학생을 각종 죄목으로 구속하였고 1,400여명을 제적시키는 한편 최소한 500명 이상을 강제징집하여 경찰서 유치장에서 바로 병영으로 끌고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정 구석구석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사복형사를 상주시키는 동시에 그것도 모자라 교직원까지 시위진압대로 동원하는 미증유의 학원탄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이러한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으며, 1982년 기관원임을 자칭한 괴한에게 어린 여학생이 그것도 교정에서 강제추행을 당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났을 때조차, 최고위 치안 당국자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하여 “교내에 경찰을 상주시킨 일이 없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밝혀내 발본색원하겠다”고 태연하게 답변하였을 정도입니다. 현재 학원가를 풍미하고 있는 정권,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은 이와 같은 정권의 학원탄압 및 권력층의 상습적인 거짓말이 초래한 유해한 결과들 중의 한 가지에 불과합니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양떼를 잃어버리는 작은 사건을 낳는데 그쳤지만 주 유왕(周 幽王)이 미녀 포사(褒似)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울린 일은 중국대륙 전체를 이후 500여년에 걸친 대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마을사람들이나 오랑캐에게 유린당하기까지 주(周)왕실을 내버려 둔 제후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않습니다.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불신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더욱이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학원탄압은 전국 각 대학에서 목숨을 건 저항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만도 고 김태훈·황정하·한희철 등 셋이나 되는 젊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83년 12월의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주전선(主戰線)이 교문으로 이동하였다는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거의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특히 지난해 9월 총학생회 부활을 전후하여 더욱 강화되었던 수사기관의 학원사찰, 교문앞 검문검색, 미행과 강제연행 등으로 인해 양자간의 적대감 또한 전례 없이 고조된 바 있습니다. 즉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학원과 정권 사이의 적대적 긴장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수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이들의 의심을 받게 된 경위 및 사건경과는 이미 밝혀진 바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 가짜학생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정보원인지 그 여부는 극히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임에 분명하지만 사건의 법률적·윤리적 측면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연행·감금·조사 또는 폭행한 것은 결코 정보원이나 단순한 가짜학생이 아닌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이었으므로, 조사 결과 그들이 정보원이었다고 해서 폭행까지도 정당할 수는 없으며, 또 아니라고 해서 학생들의 일체의 행위가 모두 부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보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 의해서 입니다.
갖가지 목적으로 학생처럼 위장하고 캠퍼스를 배회하는 수많은 가짜 학생들, 이들은 소위 대형화·종합화된 오늘날의 대학에서, 졸업정원제·상대평가제 등 대학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마비되어 제 한 몸 잘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전문기능인의 집단양성소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정권이 고안해 낸 각종 제도가 야기한 바 대학인의 원자화·고립화 등 비인간화 현상을 틈타 캠퍼스에 기생하는 반사회적 인간집단으로서, 교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절도·사기·추행·학원사찰의 보조활동(손○○의 경우처럼) 등과 복합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으로 해서 대학인 상호간에 광범위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대학의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현정권은 이들이 대학인의 일체감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 사복경찰을 상주시킴으로써 야기된 숱한 문제들마저 이들에게 책임 전가시킬 수 있다는(여학생 추행사건 때처럼) 잇점 때문에 가짜학생의 범람현상을 방관 또는 조장하여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들에 대해 평소 품고 있는 혐오감이 어떠한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들이, 이들 가짜들이, 혹은 복학생들의 소규모 집회석상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법과대학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젓이 학생행세를 하면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하다가 탄로났을 경우, 법이 무서워서 이를 묵과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겠습니까? 상호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바로 그들을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수사기관에,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의 신분조사를 의뢰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학의 교정은 개방된 장소이므로 은밀한 사찰행위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수백 수천의 정·사복 경찰이 교정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할지라도 이는 전혀 비합법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이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부도덕한 학원 탄압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여하한 실질적 저항행위도, 비록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이지만, 현행 법률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법과 양심의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가, 물론 대학사회도 포함하여, 당면한 정치적·사회적 모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바로 이와 같은 논거에 입각한 것입니다. 법은 자기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심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 피고인은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어느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지난해 9월, 10일간에 걸친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자체로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 사건은 서울대생들의 민한당사 농성사건, 주요 학생회 간부들의 제적·구속, ‘학생운동의 폭력화’에 대한 정권과 매스컴의 대공세, 서울대 시험거부 투쟁과 대규모 경찰투입 등 심각한 충격파를 몰고 왔으며 공소 사실을 거의 전면 부인하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일단락된 바 있습니다.
사건종료 다음날인 9월 28일 전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백태웅과 뒤늦게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을 겸직한 사회대 학생회장 오재영군 등이 지도한 민한당사 농성은 자연발생적·비조직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을 부도덕한 학원사찰 및 정권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조직적 투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짜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법률적·윤리적 과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학원사찰의 존재라는 별개의 정치적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이 투쟁은 그 자체로서 완전히 정당한 행위였다고 본 피고인은 생각합니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날인 9월 29일 저녁 학교당국은 이정우·백기영·백태웅·오재영 등 4명의 총학생회 주요간부를 전격적으로 제명 처분하였으며 본 피고인은 9월 30일 하오 경찰에 영장 없이 강제연행 당한 후 며칠간의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습니다. 본 피고인이 가장 먼저 연행당한 것은 미리 도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도피하지 않은 것은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도망칠 만큼 잘못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경찰·검찰에서의 조사 및 법정진술시 기억력의 한계로 인한 사소한 착오 이외에 여하한 수정·번복도 한 바 없었으며 오직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따름입니다.
어쨌든 서울시경국장은 10월 4일 소위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의 수사결과를 도하 각 신문·TV·라디오를 통해 발표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4명의 외부인을 감금·폭행한 이 일련의 사건이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합의 아래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0월 4일 이전에 경찰에 연행된 몇몇 학생들 중(본 피고인을 포함) 어느 누구도 이 발표를 뒷받침해줄 만한 진술을 한 바 없으며, 이후에 작성된 구속영장·공소장 및 관련학생들의 신문조서들이 모두 이 발표의 기본선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임은, 만일 이 모든 서류를 날짜별로 검토해 본다면,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일입니다.
한마디로 10월 4일의 경찰발표문의 본질은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견강부회·침소봉대·날조왜곡 바로 그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다름이 아니라 학생운동을 폭력지향적인 파괴활동으로 중상모략함으로써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은 물론 현정권 자체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비조직적·우발적으로가 아니라, 학생단체의 대표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몇몇 관련 학생뿐만이 아니라 학생운동 전체를 비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학생회장,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복학생협의회 대표 등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이며 어떤 행위를 실제로 했는가에 관계없이 선전을 위한 가장 손쉬운 희생물이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수법은 지난 수십년간 대를 이어온 독재정권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상투적으로 구사해온 낡은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현정권은 막 출범한 서울대 학생회의 주요 간부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동시에, 60만 대군을 동원해도 때려 부술 수 없는 학생운동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치 자신이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된 듯한 자기만족조차 조금은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검찰 역시 사실을 밝혀내는 일보다는 경찰의 발표를 뒷받침하기에만 급급하여 대동소이한 내용의 공소를 제기하고 그것에만 집착하여 왔습니다. 사건 발생후 일개월도 더 지난 작년 11월, 관악경찰서 수사과 형사들이 김도형·손택만군 등 무고한 학생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함으로써 공소사실과 일치하는 허위자백을, 형사들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짜내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즉 경찰은 본 피고인들이 ‘폭행법’을 위반하였다는 증거를 바로 그 ‘폭행법’을 위반하여 관련된 학생들을 고문함으로써 짜낸 것입니다. 그 짜내어진 허위자백이 증거로 채택된다는 사실을 못 본 체 하더라도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혀 정당한 윤리적 기초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심인으로서는 복종의 의무를 느낄 필요가 없었던 지난날의 긴급조치나 현행 ‘집시법’과 달리 이 ‘폭행법’은 지켜져야 하며 또 지켜질 수 있는 법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인은 현정권에 대한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이 법 앞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본 피고인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폭행·고문하는 각 대학 앞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들이 그 때문에 ‘폭행법’ 위반으로 형사소추당했다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9일,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이 주최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귀가하는 길에, 그녀 자신 제적학생이면서 역시 고려대학교 제적학생인 서원기씨의 부인 이경은씨가 동대문 경찰서 형사대의 발길질에 6개월이나 된 태아를 사산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부부는 이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음이 누구의 눈에나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서도, 검찰은 수사조차 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 역시 여러 차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폭행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 법의 보호를 요청할 엄두조차 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협박 또는 폭행을 가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 피고인은 폭력범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이 굳이 지난 일을 이렇듯이 들추어냄은 오직,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바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의 존재를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역시 앞에서 밝힌 바 현정권의 정치적 음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바 공소사실의 대부분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찰이 날조한 사건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서, 한편에 있어서는 정권과 매스컴이 공모하여 널리 유포시킨 일반적인 편견이 기초 위에 서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이 고문수사를 통해 짜낸 관련 학생들의 허위자백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공허한 내용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이 이 사건에서 드러난 학생들의 과실과 본 피고인 자신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렇듯 정권의 부도덕을 소리 높이 성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짜학생에 대한 연행·조사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손치더라도, 이들에게 가한 폭행까지를 정당화할 의향은 없습니다. 조사를 위한 감금은 가능한 한 짧아야 하며 폭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현상적으로 폭력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상 다 폭력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지만, 무력한 개인에게 다중이 가한 폭행은 비록 그것이 경찰에 대한 이유 있는 적대감의 발로인 동시에 그들이 상습적으로 학생들에게 가해온 고문을 흉내 낸 것이라 할지라도 학생운동의 비폭력주의에서 명백히 이탈한 행위라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폭행을 가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감당하지 않은 것 또한, 비록 그것을 어렵게 만든 당시의 특수한 정치적 사정이 개재됐다손치더라도, 학생들이 가진 윤리적 결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 폭행과 절대로 무관하며 사건 전체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여 틀림이 없을 총학생회장 이정우군이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맡아 항소조차 포기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그 누구도 선뜻 폭행의 책임을 감당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윤리의 공백상태를 어느 정도는 메꾸어 주었다고 본 피고인은 확신합니다.
본 피고인은 역시 언행이나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없지만(지시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만일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직접 그들을 연행·조사하였을 것입니다(그것이 위법임은 물론 잘 알지만). 본 피고인은 복학생 협의회의 사실상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소극적 의무에 부가하여 학생운동의 전체수준에서도 이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적극적 의무 또한 완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9월 26일 밤 전○○·정△△ 양인이 구타당하는 광경을 잠시 목격하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던 본 피고인에게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큰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 분명합니다(법률적 측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또한 임○○·손△△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도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쨌든 상당한 정도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떠맡기 위해 이정우군처럼 처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한 정권의 음모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 때문에 본 피고인은 사실과 다른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결코 시인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고 또 그런 자세로 법정투쟁에 임해 왔습니다. 그래야만 본 피고인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이, 공소사실을 기정사실화시키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요구하는 그것과는 성질상 판이한 것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본 피고인은 이 사건의 재판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 사건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진보의 계기로 삼으려면 사법부가 본연의 윤리적 의무를 완수해야 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누적된 정권과 학원간의 불신 및 적대감을 배경으로 하여 수명의 가짜학생이 행한 전혀 비합법적이라 할 수 없지만 명백히 부도덕한 정보수집행위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지 않으나 명백히 비합법적인 학생들의 대응행위를 유발함으로써 빚어진 사건입니다. 지난 수년간 현정권이 보여준 갖가지 부도덕한 행위들 - 학원 내에 경찰을 수백 명씩이나 상주시키면서도 온 국민에게 거짓증언을 한 치안당국자의 행위, 소위 자율화조치라고 하는 아름다운 간판 위에서 음성적인 학원사찰을 계속해온(이에 관해서는 법정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음) 수사기관의 행위,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사건조차 서슴지 않고 날조·왜곡한 행위 등 - 은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사건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행위 중 비합법적인 부분만을 문제 삼아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법부 자체는 이처럼 부도덕한 정권의 학원난입 행위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태의 전후맥락을 모조리 무시한 채 조사를 위한 연행·감금마저(폭행 부분이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한 1심의 판결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갖가지 반사회적 목적으로 위해 교정을 배회하고 있을 수많은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신변안전을 보장한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안전보장 선언’이 아니라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결코 학생들의 행위 전부에 대한 무죄선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부도덕한 자에 대한 도덕적 경고와 아울러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하며, 허위선전에 파묻힌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것, 사태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우리 모두의 도덕적 향상은 기대될 수 없는 것을 주장할 따름입니다. 법정이 신성한 것은 그것이 법정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그곳에서만은 허위의 아름다운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때로는 추악해 보일지라도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날의 사법부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正義)를 세우며, 또 그 정의가 강자(强者)의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1심의 재판과정에서 매장당한 진실이 다시금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 피고인은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렇지 않아도 쉽게 허물어버리기 어려울 만큼 높아져 있는 현재의 불신과 적대감의 장벽 위에 분노의 가시넝쿨이 또 더하여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고, 언젠가는 더욱 격렬한 형태로 폭발할 유사한 사태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5년간 현정권에 반대했다 하여 온갖 죄목으로 투옥되었던 1,500여명의 양심수 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신성한 법정’에서 ‘정의로운 재판관’들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야수적인 유신독재 치하에서도 역시 그만큼 많은 분들이 전대미문의 악법 ‘긴급조치’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보도 또한 긴급조치 위반이었으므로 아무도 그 일을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변론을 하던 변호사도 그 변론 때문에 구속당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긴급조치가 정의로운 법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리고 그때 투옥되신 분들이 ‘반사회적 불순분자’ 또는 ‘이적행위자’였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지만, 그분들을 ‘죄수’로 만든 법정은 지금도 여전히 ‘신성하다’고 하며 그분들을 기소하고 그분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검찰과 법관들 역시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법정이 민주주의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세워왔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진지한 인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정의란 독재자의 의지이다”고 굳게 믿는 인간일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그곳에 민주주의가 살해당하면서 흘린 피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만은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신성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본 피고인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관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정의에 관심을 갖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현명한 재판관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정의가 설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이상의 논의에 기초하여 본 피고인은 1심판결에 승복할 수 없는 이유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본 피고인은 판결문을 받아보았을 때 참으로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려 7회에 걸쳐 진행된 심리과정에서 밝혀진 사건의 내용과 거의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피고인이 그토록 진지하게 임했던 재판의 전 과정이 단지 예정된 판결을 그럴듯하게 장식해주기 위해 치러진 무가치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판결이유」의 ‘범죄사실’ 제 1 항 중 “······임○○이·····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피고인 유시민은 성명불상 학생들에게 위 임○○의 신분을 확인·조사토록 하고···”라는 부분은 형식논리상으로조차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본 피고인에게 지시를 받은 학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면, 어떻게 그가 성명불상일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본 피고인이 한번도 이를 시인한 바 없으며, 백수택군 등 여러학생들의 진술은 물론이요, 임○○ 자신의 법정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할지라도, 본 피고인이 임○○이 연행 구타되던 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인데, 하물며 본 피고인이 성명불상의 누군가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다는 일이 어찌 증명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본 피고인은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범죄사실’ 제 2 항 중 “·····위 김도인은 피고인 백태웅과 피고인 유시민 앞에서····· 구타하여 동인(손○○를 말함)에게 전치 3주간의·····다발성 좌상을 가한·····” 부분 역시, “백태웅과 유시민에게 조사받는 동안 한번도 폭행당한 일이 없다”고 한 손○○ 자신의 법정진술에조차 모순됩니다.
그리고 ‘범죄사실’ 제 3 항 중 “피고인 유시민은·····동일(9월 26일을 말함) 21:00경부터 익일 01:00까지 피고인 윤호중, 같은 오재영 및 백기영, 남승우, 오승중, 안승윤 등과 같이·····(정○○을)·····계속 조사하기로 결의하고·····” 및 ‘범죄사실’ 제 4 항 중 이와 유사한 대목 역시, 본 피고인이 당시 진행중이던 총학생회장 선거관리 및 학생회칙의 문제점에 관해 선거관리 위원들과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사실을 왜곡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이는 오승중, 김도형 등의 진술에 의해서도 명백히 밝혀진 일입니다.
이 몇 가지 예는 특히 현저하게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며 판결문 전체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사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이는 사건 전체가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지휘 아래 의도적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서, 기실 판결문의 내용 중 대부분이 침소봉대·견강부회·날조왜곡된 지난해 10월 4일 경찰발표문을 원전(原典)으로 삼아 구속영장·공소장을 거쳐 토씨하나 바꾸어지지 않은 그대로 옮겨진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1심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적 향상에 기여해야 할 사법부의 사회적 의무를 송두리째 방기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이 이처럼 1심판결의 부당성을 구태여 지적한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당한 이유에 의한 유죄선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현재 마치 '폭력 과격 학생'의 본보기처럼 되어 버린 본 피고인은 이 항소이유서의 맺음말을 대신하여 자신을 위한 몇 마디의 변명을 해볼까 합니다. 본 피고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격정적이거나 또는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코 아니며, 하물며 빨간 물이 들어 있거나 폭력을 숭배하는 젊은이는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으며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지금은 그분들의 성함조차 기억할 수 없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오히려 조금은 우직한 편에 속하는 젊은이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변명을 통하여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곧 민주주의의 재생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 전체를 옹호하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78년 2월 하순, 고향집 골목 어귀에 서서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길을 등 뒤로 느끼면서 큼직한 짐 보따리를 들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왔을 때, 본 피고인은 법관을 지망하는 (그 길이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좋은 옷, 맛난 음식을 평생토록 외면해 오신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또 그 일이 나쁜 일이 아님을 확신했으므로)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 살의 촌뜨기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따뜻한 축복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신입생이던 본 피고인은 ‘유신 체제’라는 말에 피와 감옥의 냄새가 섞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신만이 살길이다”고 하신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말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오늘은 언제나 달콤하기만 했으며,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설레던 미래는 오로지 장밋빛 희망 속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달래는 벌써 시들었지만 아직 아카시아 꽃은 피기 전인 5월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처음 맛보는 매운 최루 가스와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오던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던 여리디 여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 회관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서 겁에 질린 가슴을 움켜쥔 채 보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 입구 전망대 아래에 교내 상주하던 전투 경찰들이 날마다 야구를 하는 바람에 그 자리만 하얗게 벗겨져 있던 잔디밭의 흉한 모습은 생각날 적마다 저릿해지는 가슴속 묵은 상처로 자리 잡았습니다.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다 ‘문제 학생’이 될 조짐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겨울,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는, 자신이 법복 입고 높다란 자리에 않아 있는 모습을 꽤나 심각한 고민 끝에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해 여름 본 피고인은 경제학과 대표로 선출됨으로써 드디어 문제 학생임을 학교 당국 및 수사 기관으로부터 공인받았고 시위가 있을 때면 앞장서서 돌멩이를 던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점증하는 민중의 반독재 투쟁에 겁먹은 유신정권이 내분으로 붕괴해 버린 10·26정변 이후에는, 악몽 같았던 2년간의 유신 치하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자 총학생회 부활 운동에 참여하여 1980년 3월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봄의 투쟁이 좌절된 5월 17일, 본 피고인은 갑작스러이 구속 학생이 되었고, ‘교수와 신부를 때려준 일’을 자랑삼는 대통령 경호실 소속 헌병들과, 후일 부산에서 ‘김근조 씨 고문 살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인 치안 본부 특수 수사관들로부터 두 달 동안의 모진 시달림을 받은 다음, 김대중 씨가 각 대학 학생회장에게 자금을 나누어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속 석 달 만에 영문도 모른 채 군법 회의 공소 기각 결정으로 석방되었지만, 며칠 후에 신체검사를 받자마자 불과 40시간 만에 변칙 입대당함으로써 이번에는 ‘강집 학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영 전야에 낯선 고장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이면서 본 피고인은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니요 치욕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제대하던 날까지 32개월 하루 동안 본 피고인은 ‘특변자’(특수 학적 변동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늘 감시의 대상으로서 최전방 말단 소총 중대의 소총수를 제외한 일체의 보직으로부터 차단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하 20도의 혹한과 비정하게 산허리를 갈라지른 철책과 밤하늘의 별만을 벗삼는 생활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인 그해 저물녘, 당시 이등병이던 본 피고인은 대학시절 벗들이 관계한 유인물 사건에 연루되어 1개월 동안 서울 보안사 분실과 지역 보안 부대를 전전하면서 대학 생활 전반에 대한 상세한 재조사를 받은 끝에 자신의 사상이 좌경되었다는,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쓴 다음에야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다른 연대로 전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민족 분단의 비극의 현장인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그것도 최말단 소총 중대라는 우리 군대의 기간 부대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음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병사였음을 자부합니다.
그런데 제대 불과 두 달 앞둔 1983년 3월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녹화 사업' 또는 ‘관제 프락치 공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벗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의 억압이 수백 특변자들에게 가해진 것입니다. 당시 현역 군인이던 본 피고인은 보안 부대의 공포감을 이겨 내지 못하여 형식적으로나마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타협책으로써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는 있었지만 그로 인한 양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군사 독재정권의 폭력 탄압에 대한 공포감에 짓눌려 지내던 본 피고인에게 삶과 투쟁을 향한 새로운 의지를 되살려준 것은 본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강제 징집당한 학우들 중 6명이 녹화 사업과 관련하여 잇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동지를 팔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순결한 양심의 선포 앞에서 본 피고인도 언제까지나 자신의 비겁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순결한 넋에 대한 모욕인 탓입니다. 그래서 1983년 12월의 제적 학생 복교 조치를 계기로 본 피고인은 벗들과 함께 ‘제적 학생 복교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이 야수적인 강제 징집 및 녹화 사업의 폐지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복교하지 않은 채 투쟁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정권은 녹화 사업의 존재, 아니, 강제 징집의 존재마저 부인하면서 우리에게 ‘복교를 도외시한 채 정부의 은전을 정치적 선동의 재료로 이용하는 극소수 좌경 과격 제적 학생들’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어용 언론을 동원한 대규모 선전 공세를 펼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복학하게 되었을 때 본 피고인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복학생 협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복학한 지 보름 만에 이 사건으로 다시금 제적 학생 겸 구속 학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 피고인의 이름은 ‘폭력 학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은 이렇게 하여 5.17폭거 이후 두 번씩이나 제적당한 최초의 그리고 이른바 자율화 조치 이후 최초로 구속 기소되어, 그것도 ‘폭행법’의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폭력 과격 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은 지금도 자신의 손이 결코 폭력에 사용된 적이 없으며 자신이 변함없이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늙으신 어머니께서 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을씨년스러운 법정 한 귀퉁이에서, 기다란 구치소의 담장 아래서 눈물짓고 계신다는 단 하나 가슴 아픈 일을 제외하면, 몸은 0.7평의 독방에 갇혀 있지만 본 피고인의 마음은 늘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7년간 거쳐온 삶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민주 제도의 회복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야말로 가위눌린 민중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오늘은 군사 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 민중 항재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 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서울 형사 지방 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피고 유시민
2009년 6월 4일 목요일
농진청, 송아지 낮 분만 유도 기술 개발
이젠 농가들이 밤에 송아지 분만으로 고생할 일이 없어질 전망이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사료급여량 조절을 통해서만 낮에 송아지를 분만토록 유도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고 밝혔다.
한우농가들에게는 3~5월 송아지 생산이 집중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만이 밤에 이뤄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 농가들은 밤샘을 하기 일수다.
농진청이 최근 개발한 기술을 이용하면 오후 10시부터 새벽 4시 사이 밤시간 분만율을 3.7~10%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농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낮 분만 유도기술은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분만 전 1개월간 아침을 주지않고 저녁에 아침사료까지 한꺼번에 급여하는 것.
두 번째는 1년간 아침은 오전 7시에 저녁은 오후 8시 30분경에 급여하는 것. (일반적으로 오후 5시경에 저녁사료를 급여한다.)
세 번째는 1년간 아침에는 조사료만 급여하고 저녁은 오후 5시경 조사료와 함께 농후사료를 아침과 저녁치를 한꺼번에 급여하는 것이다.
농진청은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실제 75~94%가 낮 분만 실시가 가능하다고 밝히고, 현재 양주시, 서천군, 영천시 등에서 실증시험을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료출처 : 축산신문. 2009. 06. 03일자>
스와치 PANNA MONTATA SFK199
오늘아침 득템한
스와치 PANNA MONTATA SFK199.

그동안 퓨마 PU11472B0024 화이트 모델을 잘 사용하다가 얼마전 종혁이가 불안하게 달려있던
시계줄을 끊어먹어버려 아쉬웠는데 어제 저녁 우연히 잠자고 있던 마눌님의 스와치 시계를
착용해 보니 그럭저럭 괜찮은것 같아서 내가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 마눌님은 애들때문에 시계자체를 착용할 일이 없다.
퓨마시계를 사용하면서 부터 화이트 계열의 시계가 보기와는 다르게 꽤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선 외관을 살펴보면 색상 자체를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워낙에 시계가 얇다.(이건 스와치 시계의 전반적인 특징인듯 하다.)
마치 장난감 시계처럼 얇고 가벼워 묵직한 무게감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솔직히 큰 메리트가 없지만 있는듯 없는듯 왠만한 의상에도 무난히 어울린다.
후면에는 시계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케이스로 되어있는것이 꽤나 고급스럽다.

후면샷을 보면 대략 알겠지만 시계줄은 무슨 가죽인것 같은데...
워낙 오래전에 미영이, 미정이 한테서 선물받은거라 설명서도 없고 해서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착용샷은 ...

전체적으로 뭐... 그럭저럭 괜찮다.
스와치의 프라이드인 시간 오차 적고 디자인 깔끔하고 얇고 가볍고...
아직은 단점을 잘 모르겠다.
킹왕짱 몸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중에서 이병헌 상체가 살짝 노출이 되었다.
이정도 몸매가 되려면 운동을 얼마나 해야 할까?
근데 실제로 보면 징그러울것 같다..ㅎㅎㅎ

나는 사실 이런 몸매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군살없고 야무진 느낌(?)이 좀 더 한국적인 근육인것 같다.
터미네이터 스타일의 우락부락 근육은 ... 동물같잖아..ㅎㅎ
조재진은 모델해도 되겠다.
축구팀의 멤버가 된다는 것

그것이 어떤 팀이든 적어도 나에게 축구팀의 멤버가 된다는 것은 적지않은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개인 대 개인의 게임이 아닌 팀과 팀의 경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나의 실수나 불찰은 나 한사람 만의 문제가 아니다.
팀 전체가 나의 실력없음으로 인하여 패배를 맛봐야 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에
팀의 일원으로 게임에 임하는 일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팀의 멤버가 되어 공을 차는 그 자체를 즐기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욕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공을 차는 그 자체의 움직임을 즐기는 것이지만 그것의 대가가 팀의 패배와 이어진다면
팀의 다른 이들이 바라는 승리라는 가치를 내가 빼앗는 꼴이 되는 것이다.
지난주 경기 이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이 좋지 않고 끊이지 않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어찌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숙고하고 있는데
답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 내 보물들. Nike First Touch TF, Mercurial Veer Ball
꼭 해보고 싶은 것
나중에 종혁이나 종현이가 좀 크면
이 CF에 나오는 거 꼭 한번 해보고 싶다.^^
"맨날 짜장면이야. 여기!! 탕수육!! 대자로다가!!!"
P.S. 참고로 나는 CF에 나오는 보험회사랑은 아무 관련 없음.
사과나무-류시화

류시화
아주 가끔은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이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사과나무밭
태양이 눈부신 날이어도 좋고
눈 내리는 그 저녁이어도 좋으리.
아주 가끔은 그렇게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내가 아직 어린 소년이어도 좋고
사과나무처럼 늙은 뒤라도 좋으리.
가끔은 그렇게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아침 출근길 날씨가 어제 비가와서인지 스산하고 음산하다.
커피 한 잔을 태워 마시고 있으니 생각나는 류시화의 사과나무.
류시화는 정말이지 감성적인 작가이다.
사진설명
한 때 내게 보물 1호였던 로모 카메라로 건진 사진.
@영덕 강구의 이름모를 바닷가에서.
RunSoccer Neck Warmer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서 몸 녹이고
커피한잔 하며 런사커에 접속해 보니 넥워머 공구 공지가 떠 있더라.
오늘 자정부터 공구주문 받는데 선착순100명 한테는 넘버링을 해주고
선착순 10명한테는 원하는 넘버링을 해준다는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넥워머 필요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넥워머와 기능이 약간 비슷한 버프가 있긴 하지만 너무 얇아서
보온성에 의심이 생겼고 이번 공구 가격도 포인트 사용하니
배송비포함 4천5백원 밖에 하질 않아서 별 고민없이 질렀다.
어제 저녁에 접속해보니 넘버링 결과가 떴는데
나름 12시 정각에 접속했건만 49번째 신청이 되어 있었다.
내 넘버링은 49번...
27번을 원했건만... 아쉽게 되었다.
암튼....
넥워머 걸치고 고고싱이다~
Dean Karnazes

미국의 Dean Karnazes라는 Ultra Marathon 선수.
오늘 Costco에서 Cereal을 샀는데 Nature Path라는 회사의 제품이었다.
무심코 박스 뒷면을 보니 이 사람 사진이 있었다.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근육이 보기 좋아 인터넷을 뒤져보니
과연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다.

When Dean Karnazes completed the 26.2-mile New York Marathon in November 2006,
it marked the end of an almost impossible feat of endurance.
Karnazes had run 50 marathons in 50 states in 50 days.
This exceptional athlete's ultra-endurance feats include: running 350 continuous miles,
mountain biking for 24 hours straight, and swimming across San Francisco Bay.
That level of fitness requires relentless, dedicated training.
완전 ㅎㄷㄷ한 괴물이다...
Run when you can, walk when you have to, crawl if you must; just never give up.
- Dean Karnazes
Tess-H502 미니히터

간만에 질렀다.
영어공부

다이어리

지난 몇 해 동안 일정관리를 하는데 있어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보았었다.
머큐리얼 벨로찌(Mercurial Veloci)



진작에 푸른 잔디 위에서 찍어본다는게 이제야 몇 장 찍었다.
나의 보물 1호라고 할 수 있는 축구화 머큐리얼벨로찌.
비록 비싼 축구화는 아니지만 정말이지 엄청 아껴신고 있다.
매주 조기축구회 나갔다가 신고 오면 가죽클리너로 닦아주고
틈틈이 꺼내서 알흠다운 자태를 감상하곤 한다.^^
참고로 사진에 같이 찍힌 축구공은 팀가이스트 매치볼이다.
우리 축구회에서 매치볼로 쓰고 있는데 역시 매치볼 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큼 멋진 공이다.
조기축구회
조기축구회에서 간만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 날은 풋살모임이었는데 찍힌 사진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 우승팀 기념 촬영. 운좋게도 내가 속한 팀이 이겼다.
▼ 이날 모인 사람들과 단체샷. 근데 없는 사람도 있는것 같다.

▼ 요것두 우승멤버 기념샷. 명랑모드~

▼ 하프타임 때 호빵먹고있는데 찍혔다..ㅎㅎ

졸음이 쏟아지는 종혁이
지난주 토요일 가족들 설 선물 사러 이마트에 갔다가
계산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종혁이가 좀 이상했다.
쇼핑카트 안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길래
그 모습이 우스워 핸드폰으로 찍어본 영상.
Flow Cytometry
우리회사의 핵심 기계라고 할 수 있는 FlowCytometer.
이번에 새로이 출시된 MoFlo XDP 모델과 같은 모델은 아니지만
플로우사이토메터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좋은 영상.
2009년 6월 3일 수요일
할당관세 축소 움직임, 업계 반발
사료가격이 전체 축산물 생산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리가 없을 터인데...
이것도 MB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일까?
비교우위가 없는 축산이라는 산업은 이제 정말 사장시키시려고 작정하신 걸까?
마음이 너무 무겁다.
작년 한 해에만 사료가격이 6차례 올랐는데 이번에 또 오르겠구나...
정부가 세수감소를 이유로 하반기에 수입사료 원료의 할당관세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관련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세수감소에 따른 재정확보차원에서 지난해 19개 품목에 대해 적용해 줬던 할당관세 품목수를 대폭 낮추고 할당관세 적용 품목이라도 무관세 적용을 배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같은 정부 운용방향에 대해 관련업계는 양축농가들이 지속적으로 사료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할당관세를 축소할 경우 가격인상 요인이 발생, 결국 양축농가들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업계 추산 결과 지난해 할당관세 적용으로 전체 사료시장 7조 2000억원의 2.6%의 해당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업계는 이에 따라 한·미 FTA와 한·EU FTA 등 시장개방 여파와 국제 곡물가격 상승 등의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할당관세까지 축소할 경우 업계는 물론 농가들의 경영악화가 불가피하다며 할당관세 품목과 세율, 수량 등을 현행과 같은 수준으로 적용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순찬 한국사료협회 기획부장은 “최근 환율은 다소 안정세를 보이지만 국제곡물가격과 선임은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상황”이라며 “갈수록 경영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할당관세마저 축소된다면 업계는 물론 생산농가의 경영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료출처 : 농수축산신문. 2009. 05. 29일자>
항생제 사용 줄었는데 심각성 보도 후 정정
축산농가들은 지금의 어려움을 자연 친화적인 사육환경으로의 개선으로
극복해 보고자 피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언론과 시민들은 이를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항생제를 줄이는 일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농사를 하면서 농약을 치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 것 보다
곱절은 더 힘들다고 보면 될것이다.
축산농가들이 피와 땀으로 생산하는 축산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늘 마음이 불편하다..
언론의 오보 소동 … 피해는 농가만
축산현장에서의 항생제 사용량 감소에 힘입어 항생제 내성균 검출 비율이 꾸준히 줄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일부 언론이 이 내용을 잘못 보도하면서 사실이 잘못 알려져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일이 발생했다.
5월2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청장 윤여표)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의뢰해 수행한 ‘가축 및 축산물 내 주요 항생제 내성 실태 조사 및 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동물용 항생제 총 사용량이 1,211t으로 2002년에 비해 21.4% 감소했다. 이 가운데 동물용 항생제 사용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테트라사이클린도 같은 기간 동안 39% 감소한 471t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합사료용 항생제와 농가 자가치료용 항생제 사용량이 447t, 673.7t으로 2007년에 비해 각각 26%, 19.7% 감소하고, 수의사 처방용 항생제는 9.5% 증가해 올바른 사용이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했다.
이에 따라 가축의 항생제 내성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역원이 도축장과 소매점에서 채취한 473개 소·돼지·닭 시료에서 분리된 대장균의 테트라사이클린 내성률을 조사한 결과 평균 74%(돼지고기 90.1%, 닭고기 82%, 쇠고기 39.2%)의 내성을 보였다. 소·닭·돼지의 분변에서 분리한 대장균은 내성률이 71.8%로 2007년 조사에 비해 4~6%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인체 건강과 거의 무관한 테트라사이클린과는 별도로, 인체에 널리 사용되는 세파계나 퀴놀론계 항생제 내성률은 5~20% 정도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약청이 2003년부터 추진해온 ‘국가 항생제 내성 안전관리사업’ 결과에 따라 수의과학검역원이 배합사료 첨가용 항생제를 53종에서 올해 18종으로 줄이고, ‘동물용 항생제에 대한 잔류기준’을 2007년 58종에서 2009년 72종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농림수산식품부가 2007년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제’를 도입한 결과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한 국내 언론사가 같은 날 “시중에 판매되는 돼지고기의 90% 이상에서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이 검출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가 식약청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돼지고기에서 분리한 대장균의 90% 이상이 항생제 내성을…”로 내용을 변경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 기사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실제 연구 결과 도축장에서 나온 돼지 도체(지육) 125건에서 분리된 61개 대장균군 중 90.1%인 55건이 테트라사이클린 내성을 나타낸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이를 오해해 시판되는 돼지고기 125건 중 90.1%가 내성을 지닌 것으로 잘못 보도했다”고 강조했다.
지육과 별도로 식약청에서 시판 돼지고기를 별도로 조사한 결과 56건 중 9건에서만 대장균이 검출됐으며, 이 가운데 5건에서만 테트라사이클린 내성이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식약청측은 “내성균 감소 결과 발표를 통해 신종 인플루엔자 사건으로 마음고생이 심한 축산농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했는데 사실이 잘못 알려져 안타깝다”며 “정정을 요구했지만 (뼈가 붙어 있는) 지육을 돼지고기로 여전히 잘못 보도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02-380-1682.
<자료출처 : 농민신문. 2009. 06. 01일자>
2009년 6월 2일 화요일
한국 장로교 정치 제도의 발전 방향 - 변종길
서론
사도행전 14장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소아시아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는데, 그 후에 다시 그곳으로 가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운 다음 하나님께 부탁하고 떠나갔다. 이처럼 바울이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자기 혼자서 모든 교회를 일일이 관리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교통도 불편하고 통신도 발달하지 않아서 매주일마다 여러 교회를 다 돌아볼 수도 없거니와 교회의 모든 일을 자기가 다 지도하고 통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바울은 교회를 세워 놓고 떠날 때에 너희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마치 클럽처럼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성도들이 다 모여서 결정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교회는 처음부터 의견이 분분하고 중구난방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대신에 바울은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좋고 훌륭한 사람들을 장로로 세워서 교회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는 세상의 정치 형태로 말하면 ‘공화정(共和政)’에 가까우며, 교회의 정치 형태로 말하면 ‘장로회 정치’이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의 상당수 교회는 장로교회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란 말은 교회 정치 형태가 ‘장로회 정치’란 의미이다. 그렇다면 장로회 정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장로회 정치 제도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의 장로교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성경과 역사적인 자료들, 그리고 현재의 한국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교회 정치 제도의 종류
먼저 교회 정치 제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크게 나누어 세 종류의 교회 정치가 있다. 곧 ‘감독 정치'와 ‘회중 정치’와 ‘장로회 정치’가 있다.
1) 감독 정치
감독 정치란 여러 개의 개교회를 돌아보고 다스리는 ‘감독(bishop)'의 권한을 인정하는 정치 제도이다. ‘감독’이란 한 교회만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교회를 돌아보고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장로교회에는 감독이 없다. 장로교회에서는 아무리 능력이 있는 목사라도 다른 이웃 교회를 다스릴 수 없다. 즉 다른 교회를 주관하거나 간섭할 권한이 없다. 장로교회에는 모든 목사들이 동등하다. 그러나 옛날의 사도들은 여러 교회를 다스리고 지도하였다. 그래서 감독 교회는 초대 교회의 사도들을 본받아서 이 감독 제도를 주장하고 있다.
감독의 가장 큰 권한은 ‘성직 임명권’이다. 예를 들면 감독은 어느 개교회의 담임 목사를 임명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장로교회는 이와는 달리 공동 의회의 결의를 거쳐 목사를 청빙한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뜻을 반영하여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감독 정치에서는 감독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교회의 담임 목사로 임명하여 파송한다. 그러므로 감독 교회 정치 제도하의 담임 목사는 그 교회 교인보다는 임명권을 가진 감독의 눈치를 더 보게 된다. 그러므로 목사는 교회를 돌아보는 것을 소홀히 할 위험성이 있다.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장로들을 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택하다”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의 ‘흠정역(KJV)’ 번역에서는 장로들을 “임명하였다(ordained)”라고 번역하였다. 흠정역은 일반적으로 매우 좋은 번역이긴 하지만, 이 번역은 “King James Version”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듯이 제임스 왕의 후원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왕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번역된 것들이 좀 있다. 즉 다소 권위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번역된 것이 있다. 그러나 원문에 보면 “손을 들다(케이로토네오)”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어떤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시민들이 모여서 민회에서 직접 결정하였다. 이때 손을 들어서 투표하였기 때문에 이 ‘케
이로토네오(cheirotoneo)’란 단어는 ‘택하다, 선출하다’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화란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던 ‘국역 성경’은 “손을 들어서 장로들을 선출했다”라고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다. 이를 볼 때 화란의 국역 성경이 이 구절의 원래 의미에 충실하며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를 잘 드러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감독 교회의 형태를 띠고 있는 교회로는 ‘감리교회’와 ‘영국 성공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있다. 감리교회는 요한 웨슬리가 창시한 교회를 말한다. 영국 성공회는 1533년에 영국의 헨리 8 세가 로마 카톨릭과의 관계를 끊고 창설한 교회 형태를 일컫는다. 로마 카톨릭 교회 곧 천주교는 감독 교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데, 평신도들 위에 사제가 있고 그 위에 주교가 있고 그 위에 대주교가 있으며 제일 꼭대기에 교황이 있다. 그래서 교황이 주교와 사제를 임명하며, 교황이 무엇을 말하면 그것이 곧 법이 되고 진리가 된다. 즉 교황이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형태가 카톨릭 교회이다.
2) 회중 정치
회중 정치는 다른 말로 독립 교회의 정치이다. 이것은 감독 정치와 정반대의 정치 제도이다. 회중 정치는 교회 구성원 개개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어떤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전체 교인이 모인 회의에서 안건을 의논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회중교회는 다른 외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다. 장로교회는 노회를 구성하여 개교회를 관리하며, 개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노회와 총회가 간섭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회중 정치에 의하면 개교회 위의 노회나 총회를 인정하지 않으며, 개교회의 ‘자율성’과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에 해당하는 교회로는 ‘침례교회’와 ‘회중교회’가 있다. 회중 정치 제도에 의하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교회간의 협력이 어렵다. 하지만 교회간의 협력이나 교제가 필요할 때는 ‘협의체’를 구성하는데, 이 협의체에서 의논하고 결정한 것은 구속력이 없다.
3) 장로회 정치
장로회 정치 제도는 제네바의 존 칼빈에 의해 시작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에 의해 발전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장로회 정치 제도가 발전하였는데, 그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스코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탄압이 아주 심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를 바르게 세우려는 목사와 장로들이 매주 월요일 모여서 일종의 수양회 같은 것을 가졌다고 한다. 원래는 성경 공부를 하고 교제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이것이 차츰 발전되어 교회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의논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여기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노회(presbytery)’이다. 노회(老會)란 장로회(長老會)를 뜻한다. 곧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서 교회의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모임을 말한다. 이 ‘노회’가 중심이 되어 교회의 문제를 결정하는 정치 제도가 곧 장로회 정치 제도이다. 노회 위에 총회가 있고 노회 밑에는 개교회의 당회가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노회에 중요한 권한이 주어져 있는 것이 장로회 정치 제도이다.
이 장로회 제도에서는 신약 성경에서 나오는 ‘감독’을 ‘장로’와 같은 의미로 보았다. 여기서 ‘감독’이란 감독 정치에서 말하는 바 목사들 위의 감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상 교회를 ‘돌아보는 자(episkopos)’란 의미이므로 장로와 같은 의미로 보았다. 또한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을 따라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의 두 종류로 나누었다. 이 ‘치리하는 장로’는 오늘날의 장로를 말하고 ‘가르치는 장로’는 목사를 뜻한다. 즉 목사는 교육과 치리를 담당하는 장로이고, 일반 장로는 치리만 하는 장로이다. 이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서 당회를 구성한다. 이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하여 미국으로 건너가서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초기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에는 장로교회가 뿌리를 내리고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2. 장로회 정치 제도의 장단점
그러면 장로회 정치제도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장점
첫째, 교역자들의 일방적인 독재를 견제할 수 있다.
감독 정치 하에서는 교역자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했다. 카톨릭에서는 성직자가 결정하면 끝이 난다. 여기에 이의를 달 수 없다. 그러나 장로회 정치 하에서는 목사 혼자서 교회 일을 다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설교는 목사가 담당하지만, 교회의 행
사는 장로들과 모여서 의논하여 결정하게 하는 제도이다. 평소에는 목사가 문제없이 잘 하겠지만,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행정이나 운영에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 당회가 있어서 장로들과 함께 의논함으로써 실수를 줄일 수 있게 된다.
둘째, 신앙이 좋고 경륜이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 교회를 다스리게 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모든 회중이 모여서 의논해야 한다면, 이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평교인들은 예배에 1시간 참석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매주마다 예배 후에 1시간씩 의논한다면 교인들이 견디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회에 잘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을 모든 교인들과 의논할 때 이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이와 반대로 장로회 정치 제도는 대부분의 문제를 목사와 장로들만 모여서 의논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셋째, 이 제도는 건덕적이다.
예를 들자면 교회에는 평교인들이 다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을 의논해야 할 때도 있다. 교회에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혹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징계 문제를 다룰 때 목사와 장로들이 심사숙고하여 적당히 권면을 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징계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을 모든 교인들이 모여서 누가 어떤 죄를 지었느니 하고 공개적으로 다룬다면, 이는 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장로회 정치 제도는 교회의 건덕을 좋은 제도이다.
넷째, 장로회 정치 제도는 교회 전체의 동의나 협력을 얻어내는 데 유리한 제도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수련회를 한다고 하자. 목사 혼자서 장소와 날짜 등 모든 것을 다 결정하여 동해안으로 가자고 하면 참여가 부진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 중에는 서해가 좋다, 남해가 좋다, 지리산이 좋다 등등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당회에서 장로들과 의논하여 결정하면 교회 전체의 결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교인들은 당회가 결정하였으므로 이에 따르자고 쉽게 동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제도는 교인들의 동의와 협력을 얻어내는 데 유리한 제도이다.
다섯째, 교인의 교회 행정과 봉사에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봉사의 보람을 갖게 한다.
즉 목사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여 지도하고 다스리는 것보다 장로들이 함께 참여하여 의논하고 교회 일에 참여함으로써 봉사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회중교회처럼 모든 교인들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므로 한계는 있다.
2) 단점
그러면 장로회 정치제도의 단점은 무엇인가? 장로회 제도가 비록 성경적으로 옳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참여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있다. 이를 좀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로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로회 제도는 교인 전체가 교회 행정에 다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인격이 겸비된 소수의 사람을 뽑아서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그렇게 되다 보니 장로들에게 권한이 많이 주어지게 되었다. 감독 정치 제도하에서는 교역자들에게 권한이 너무 많이 주어져서 문제가 되었다면, 장로회 정치 제도는 장로들에게 권한이 너무 많이 주어져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는 장로들에게 권한이 많이 주어진 반면 책임지는 것은 너무 미약한 경향이 있다.
둘째, 특정 장로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 이것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
교회에는 문제가 많이 있다. 물론 문제가 있을 때에 교역자는 자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한다면 도덕적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즉, 장로 한 두 사람이 고집을 부리고 문제를 일으켜서 교회를 어렵게 할 경우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현재 한국의 장로교회에서는 미흡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실제로 중요한 문제이다.
셋째, 목사와 장로를 너무 같은 수준에서 보는 것도 문제이다.
장로교회의 원리에 의하면 목사도 장로로 보았다. 신약 성경에서 ‘장로’는 헬라어로 ‘프레스비테로스(presbyteros)’인데, 이는 원래 원로(元老) 곧 나이 든 사람을 말한다. 이 원로는 옛날 유대에서 나이가 많고 경험이 있고 인품이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서 마을의 일들을 처리하게 한 것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장로’란 연륜이 있고 경험이 많은 ‘지도자’를 뜻한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세웠는데, 이 장로는 교회를
지도하는 ‘지도자’이다. 그래서 오늘날 장로보다는 의미가 넓다. 그래서 목사도 교회의 지도자라는 의미에서 장로라고 불린다. 그리고 오늘날의 장로도 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장로라 불린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와 장로를 다같이 ‘장로’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목사와 장로를 ‘모든 면에서’ 같다고 보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목사와 장로는 같은 장로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목사는 전적으로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복음을 위해 훈련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장로는 세상 일을 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다. 따라서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면서 일해야 하는 것이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다스리는 장로들’과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로 구별하였다(딤전 5:17).
넷째, 장로를 교인의 대표로 보는 생각도 잘못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장로를 ‘교인의 대표자’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장로는 교인의 대표로 세워진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목사는 노회에서 파송되어 오지만, 장로는 교인의 대표니까 교회의 주인은 장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들은 목사를 고용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이것은 직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온 것이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다 하나님께서 세워서 맡기신 직분이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하기 위해 필요해서 세우신 직분이다. 개혁교회의 “장로, 집사 장립 예식문”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교회를 다스리시고 돌보신다. 그리스도는 이를 위해 사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는 그의 교회에 직분자들을 주신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른 것이다. 장로는 교인의 대표자라는 생각은 잘못된 인간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교회 안에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한국 교회 안에는 목사와 장로 간의 갈등과 대립이 매우 많다. 교회 안에서 특히 당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많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 모두 다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째, 장로의 정치제도는 본질적인 문제로 교회 회중 전체의 뜻을 반영하는 데 미흡하다.
장로회 정치 제도에는 불가불 약간의 권위적인 면이 남아 있다. 장로회 제도는 교인들 중에서 소수를 뽑아서 다스리게 하기 때문에 회중 전체가 개입되어 참여하는 것이 미흡하다. 물론 교회에 권위가 살아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교회 행정에 다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너무 지나쳐서 불필요하게 권위주의적으로 되고, 평신도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때에 따라 평신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도 존중해야 할 필요성도 있는 것이다.
3. 장로직 임기제
다음으로 필자는 현재 한국 교회가 당면한 한 중요한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이는 곧 장로직 임기제에 관한 것이다. 장로직을 임기제로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한국 교회의 장래를 바라보면서 원리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1) 신약 성경과 장로직
물론 신약 성경에는 ‘장로직 임기제’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종신제’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도 않다. 성경에는 어느 말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 성경을 읽어 볼 때 대체로 신약 교회의 장로들은 종신토록 봉사했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일반적으로 느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종신제를 따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을 보니까 장로들은 종신토록 봉사하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상당히 미묘하지만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교리와 진리 문제, 즉 구원이나 신앙 생활에 관계되는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 생활의 표준이 된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시대가 변했으니까 오늘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 제도나 교회를 섬기는 봉사의 방법 중에서 어떤 것은 꼭 불변의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장로를 세우는 것은 우리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세부적인 것까지 모든 것을 오늘날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초창기 교회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초대 교회는 거의 모든 교회가 가정 교회였다. 즉 가정에서 모여 예배 드리고 식사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교회도 전부 가정에서만 예배 드려야 하고,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초대 교회는 예배당 건물도 없었고 성도들도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전도했지만, 그 때 한 교회에 교인이 많았다고 볼 수는 없다. 아마 몇 십 명 또는 몇 명 안팎이었을 것이다. 에베소 교회 같은 교회는 어쩌면 백 명이 넘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어느 유력한 성도의 집에 모여 예배 드렸을 것이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사도 바울이 교회당을 지었다는 기록이 없다. 아마 교회당을 건축했다면 많은 곳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의 생애를 마쳤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 사도로서 복음을 지중해 연안 일대에 편만하게 전해야 했기 때문에
교회당을 지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교인들 중에서 신앙이 좋고 부유한 성도의 집에 모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가정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자. 신약 성경에는 주일학교를 했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도 주일학교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잘못이다. 처음에는 초창기라서 주일학교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주일학교를 세우고 교사들을 임명하고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신앙 교육을 잘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진리의 표준이다. 그러나 주일학교를 조직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식으로 조직할 것인가 하는 것은 성경에 모두 기록된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은 시대와 형편에 따라 교회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로에 대해 종신제냐 임기제냐 하는 것도 절대 불변의 진리나 교리는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있는가? 란 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2) 역사적 고찰
역사적으로 이 문제를 고찰해 보면, 개혁교회는 대부분 임기제를 실시했다. 그것은 실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 주된 이유는 권위주의를 피하고 교회 정치에 대한 평신도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를 지내 오면서 천년 이상 교권에 눌려 온 성도들이 권위주의를 피하고 평신도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이 장로에 대해서도 임기제를 도입하게 된것이다.
제네바의 칼빈은 이렇게 보았다. 즉 역사의 교훈을 고려해 볼 때 장로 임기제를 실시하는 것이 교회를 위해 큰 유익이 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과거 중세 카톨릭 교회를 보면 성직자가 교회에서 독재를 하게 되고 교인들이 압제를 당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직자만 자유로웠지, 교인들은 노예와 다름없었다. 신부가 말하면 꼼짝 못했다. 거기에는 복종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세 천년 동안 교인들을 영적으로 우매하게 만들었고 노예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이것을 타파했다. 칼빈은 교인들이 선출하는 장로직을 도입했다. 교인들이 장로를 선출한다는 것은 중세에는 없었던 것인데, 종교개혁 시대에 다시 부활된 것이다. 곧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했던 것을 부활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목사와 장로들이 교회를 치리하도록 했다. 이 장로에 대해 칼빈은 일시적으로 봉사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있는 여러 능력들과 은사들이 가능한 한 많이 나타나고 발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들도 자격이 있으면 다음 기회에 장로를 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은사를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한 교회 안에서는 어떠한 독재도 방지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자의 경우는 다르다고 보았다. 종교 개혁자들은 목사를 ‘설교자’로 보았다. 이것은 그만큼 설교의 직분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회복한 것은 바로 설교의 권위이다. 즉 예배에 있어서 미신적인 성찬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증거가 핵심이라고 하여 목사를 ‘설교자’ 또는 ‘말씀의 수종자’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설교자의 경우는 장로와 다르다고 보았다. 설교자의 직분은 일시적이 아니라 평생토록 주어진다. 그리고 이 직분을 위해서는 수년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실제로 한국에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부터 계산하면 대학 4년, 대학원 3년, 강도사 3년 합해
서 10년이 걸린다. 이렇듯 목사가 되는 것이 참 어렵다. 그리고 목사직을 위해서는 생애 전체를 바친다. 곧 다른 세상 직업을 다 버리고 전적으로 목사직에 종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사에 대해서는 임기제를 도입할 수 없다고 보았다.
제네바 교회에서는 장로와 집사들을 해마다 새로 임명했다. 물론 재임명될 수는 있었지만 임기는 1년 으로 정해져 있었다. 제네바 교회에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장로들을 교회가 아니라 제네바 시의회가 해마다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즉 종교개혁 당시의 제네바는 교회와 시의회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과는 다른 측면이 있었다. 12명의 장로들은 해마다 2월에 1년 임기로 임명을 받았다. 칼빈 사역 후반기에는 ‘목사회’에서 합당한 장로 후보를 시의회에 추천했다. 이 제도가 좋다고 해서 많은 다른 곳에서도 호응을 받았다.
칼빈 이후로 프랑스 개혁교회가 칼빈의 제도를 따랐고 화란 개혁교회도 칼빈의 원리를 따라 장로와 집사 임기제를 따랐다. 1571년 엠던(Emden) 총회에서 장로와 집사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였다. 이 기간은 교회 형편에 따라서 늘일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1574년과 1578년의 도르트레흐트(Dordrecht) 총회에서는 엠던 총회의 결정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1581년 미들버르흐(Middelburg) 총회에서는 장로와 집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매년마다 그 정수의 반을 교체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다르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곧 ‘2년’이란 것은 절대적인 원리가 아니라 교회 형편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유가 없을 때에는 2년으로 하도록 했다. 그 후의 총회들은 이 결정을 그대로 따랐다.
3) 현재의 개혁교회
이처럼 개혁교회의 전통을 보면 장로의 임기는 종신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재 화란 개혁교회는 대개 장로의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있다. 그 기간은 교회의 형편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시골과 같이 장로를 구하기 어려울 때에는 좀더 연장할 수도 있고, 다른 교회에서는 3년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4년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장로가 4년 동안 봉사하고 나서 신임투표를 하고 다시 봉사한다는 것이 아니라, 4년을 봉사하고 나면 완전히 장로직에서 물러나서 평신도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다시 장로로 선출될 수 있다. 그래서 선출되면 다시 장로로 봉사하게 되고, 떨어지면 그냥 평신도로 남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어떤 교회에서는 장로임기제도를 형식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즉 3, 4년 봉사하고 나면 신임투표를 해서 다시 봉사하게 한다. 그것도 3분의 2 찬성이 아닌 과반수 찬성으로 하거나,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당회에서 투표하기도 한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화란 개혁교회는 완전한 장로임기제이다. 필자는 화란의 장로들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화란의 장로직은 말 그대로 봉사직이다. 한번은 알고
지내던 장로를 길에서 만나서 “장로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더니, 그 장로님은 웃으면서 자기는 이제 더 이상 장로가 아니라고 했다. 즉 화란은 장로 임기가 끝나면 평신도로 돌아오고 장로라는 호칭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장로와 집사는 대개 종신제로 하고 있다. 물론 은퇴 연령이 있어서 종신제에서 약간 후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의 종신제이다. 이런 종신제는 한국 교회의 초창기에는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20세기 후반이 지나고 21세기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각도에서 한국 교회의 문제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되고, 종교개혁 당시로 돌아가야 되고, 개혁교회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5. 한국 장로회 제도의 개선 방향
마지막으로 한국의 장로회 제도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 시간 관계상 간략히 두 가지만 말하도록 하겠다.
1) 장로직의 임기제 도입
첫째로, 장로직의 임기제 도입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국내에 찬반토론이 있고 반발이 많은 것으로 안다. 언젠가 서울에서 토론이 있었으나 아직까지 채택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지방은 더 하리라 본다. 그렇지만 이제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필자는 이것이 앞으로 불가피하며 대세라고 본다. 앞으로 10년 내지 20년이 지나면 상당한 변화가 있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장로의 권한이 너무 강해지면 피해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는 봉사를 잘 하고 교회에서 충성해 왔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나쁜 영향이 많이 흘러 들어오고 있다. 또한 평신도들의 소외도 심화되고 있다. 장로회 제도는 카톨릭의 교역자의 전횡을 막는 데는 기여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장로들이 권위를 부리는 제도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소외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 시대는 인터넷을 통하여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물론 인터넷은 단점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 중 유익한 것 하나는 이로 말미암아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국가의 중요한 문제 대해 국민이 직접 의사를 표현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정치가 오늘날 인터넷의 도움으로 다시 가능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감안하면 장로의 임기제 도입은 필연적인 대세라고 본다.
그리고 이왕 도입해야 한다면 빨리 도입하는 것이 좋다. 필자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자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대세라도 성경에 어긋나고 개혁교회의 원리에 맞지 않으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이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손해와 고난은 감수해야 하고 핍박으로 여겨야 한다. 그렇지만 원리가 옳고 교회에도 유익이 되고 시대도 그렇게 나아간다면 도입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가능한 한 빨리 도입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선점효과’ 때문이다. 즉 먼저 뛰어들었을 때 누리는 유익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인터넷 업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물론 교회의 경우는 시간이 좀 길다. 그러나 교회에도 성경적으로 원리상 옳다면 먼저 도입하는 교회에 많은 유익이 있게 된다. 좋은 제도를 먼저 도입하게 되면 뭔가 신선하고 이미지가 좋게 되어 특히 젊은 층이 교회로 몰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왕 할 바에는 먼저 시행하여 선점효과를 노리는 것이 좋다. 또한 이왕 할 바에는 형식적인 신임투표제가 아니라, 완전한 임기투표제를 하는 것이 좋다.
2) 평신도의 참여 확대
둘째로 평신도의 교회 행정에의 참여 확대이다.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해서 회중교회의 장점을 어느 정도 살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회중교회에 문제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 전체의 의견을 묻고 최대한 반영하려는 것은 이상적이고 좋은 점이 있다. 따라서 장로교회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회중교회의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것은 장로교회 제도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장로교회가 옳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회의 장로회 제도는 유교적인 문화가 결부되어 권위적으로 나아가고 있고, 거기에서 평교인들과의 괴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평교인들에게도 무언가 참여를 확대할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장로교회의 원리를 무시하면서까지 평신도들을 당회에 참여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여전히 당회는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구성된 것이다. 교회의 주요 문제들은 말씀을 전하는 목사와 신앙이 깊고 오랜 경험을 쌓은 장로들이 다루는 것이 옳다. 그리고 교회 일 중에는 평교인들이 알면 상처받는 일도 있다. 따라서 당회는 그대로 존속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교회 교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공청회를 생각할 수 있다. 즉 교회당을 건축할 때 어떤 모양이 좋은지 평신도들에게 말할 권리를 주는 것이 참여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청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교회가 시험에 들때에는 공청회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공청회가 바람직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음으로 우리는 인터넷을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에는 게시판이 있다. 그러나 게시판 운영도 어려움이 있다. 엉뚱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이상한 글을 싣고 나갈 때가 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신앙과 교회에 손해가 되는 글이 올라오지 않도록 게시판을 엄격하게 관리하든지, 이것이 어려우면 폐쇄하는 것이 낫다. 다음으로 건의함 설치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상당히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평소에는 이용자가 별로 없겠지만, 몇 년이 가도 평교인들이 목사와 당회에 말을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에 글을 써서 건의함에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하나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목사가 상담 시간을 정해 놓고 교인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필요가 없으나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든지 어떤 중요한 문제에 있을 때에 이러한 방안을 시행하는 것도 매우 유익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 통로가 없으면 교인들끼리 모여 문제에 대하여 수근수근거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담 시간은 이런 것을 피하고 대화의 통로를 열어 놓는다는 면에서
필요하다. 그 외에 공동 의회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장로교회의 정치 제도의 원리를 보면 당회가 있고 제직회가 있고 공동의회가 있다. 그러나 공동의회는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것으로 끝나며 대부분의 경우 형식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공동의회는 교회의 최고의결기구인데 이것을 좀더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21세기를 맞이한 현재 한국 교회의 시점에서 볼 때 교회 행정에 평신도들의 참여를 어느 정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를 다라 지혜롭게 하여야 한다.
결론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성경 구절을 한 곳 살펴보고 마치려고 한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12절에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1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직분을 주셨음을 말한다. 곧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 이어서 12절은 직분을 주신 목적을 말하고 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려 하심이라.” 즉 직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높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2절의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는 우리말 번역은 좀 부정확하다. 여기에서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가 두 가지로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원문에 보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곧 “성도들을 무장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로 되어 있다. 좀 더 직역하면 “성도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도록 무장시키며”이다. 즉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을 주신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도록 무장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무장(武裝)’이라는 것은 준비를 시키는 것을 말한다. 곧 군인이 전쟁에 나가서 싸울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갑옷을 입히고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목사와 장로와 집사 등의 직분을 주시는 것은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직분자들이 다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직분자들이 다 봉사하고 만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거의) 봉사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만약 평신도에게 왜 봉사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자기는 직분을 받지 못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처럼 직분을 받아야만 봉사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위 12절 말씀을 잘 이해한다면 모든 직분자들이 해야 할 일은 모든 교인들이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들은 자신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신도들을 끌어들여 그 사람들이 교회에서,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협력자가 되고 조력자가 되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한 사람만 수고하고 한 사람만 영광받는 것이 아니라, 또는 소수의 사람만 수고하고 소수의 사람만 영광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
인들이 함께 수고하고 함께 영광받는 그러한 체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며, 개혁교회 곧 우리 한국의 장로교회가 나아가야 할 모습이다. 따라서 참 교회에서는 “나는 직분이 없으므로 봉사할 수 없다”는 말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봉사하고, 집사와 장로는 평교인들의 조력자가 되어서 더욱 열심히 봉사함으로 다 함께 봉사의 즐거움을 누리는 교회가 되어야 올바른 교회이다. 우리 한국 교회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유
익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이 글은 지난 2000년 8월 1일 대구 명덕교회(장희종 목사 시무)에서 행한 특강을 토대로 정리하여 2000년 10월 21일자(상), 10월 28일자(중), 11월 4일자(하) .기독교보.에 게재한 원고입니다.
2009년 6월 1일 월요일
SK 브로드밴드 무선 인터넷 윈 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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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노트북으로 무선인터넷을 쓰고 싶어 무선 공유기를 알아보던 중
우연찮게 SK 브로드밴드 윈프리 라는 상품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집에서 데스크탑은 유선으로 쓰고 노트북 1대에 한해서 무선 랜카드의
Mac 번호 인증 방식으로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다.
랜카드 맥번호 인증방식이므로 등록된 랜카드로만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다.
이는 다른 집에서 무분별하게 접속하여 도둑처럼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처음 설치된 AP기가 워낙 성능이 좋지 않아 서비스센터에 AP기를 바꿔달라고
요청하였더니 오늘 기사가 와서 교체해 주고 갔다.
적어도 집 안에서는 50M 정도의 인터넷을 쓰는데 지장이 없다.
AP기는 대부분 50M급 까지만 지원되는 기종들이다.
데스크탑 컴퓨터는 광랜으로 집사람이 쓰고 나는 노트북으로 이정도 속도면
만족스럽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참 좋은것 같다.
예전에는 이웃집에서 새어나오는 신호를 훔쳐쓰다 보니 신호도 많이 약했고
집 안에서도 되는 지점이 있고 안되는 지점이 있었는데
이제 적어도 집 안에서는 문제없이 신호가 잡히는것 같아 만족스럽다.^^
요금이 추가로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무선 공유기를 따로 살 필요도 없이
간편하게 양질의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어 즐겁다..
참 좋은 세상이다..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