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spress.co.kr/kidokkyobo/section/detail.htm?aid=1242805336
인간의 전적 타락을 선언하는 칼빈의 인간관은 과연 부정적이고 염세적인가? 종교 개혁자 칼빈에 따르면 타락으로 인해 인간에게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전적으로 사라져 버리거나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죄로 인한 그 오염이 너무나도 심하여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끔찍하게 기형적이 된 형상일 뿐”이라고 선언한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의 의지는 전적으로 일그러졌고, 인간의 이성은 오염되어 완전히 무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은 자유 의지의 위대한 권세를 상실하게 하였고, 일그러진 의지는 “더 이상 악에 대항하여 투쟁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자유의지가 건재함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오히려 그들에 의해 자유의지는 더욱 짓밟히고 있다. 인간의 의지는 더 이상 자율성이 없으며, 오직 잔혹한 욕구에 의해 종노릇하게 되었을 뿐이다.
인간의 이성 역시 손상이 되어, 이성과 이해력의 능력이 소실되었고, 잘못된 일을 정당화하는데 이성이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 인간의 이성이나 오성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어서, 비록 그가 “가장 위대한 천재라 하더라도 두더지보다 더 눈이 먼” 이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 고결하다 할 수 있는 자신의 존엄성과 인간의 가치 자체까지도 파괴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그리지 않는다. 비록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고, 스스로 의롭게 되는 길을 상실했지만, 인간의 이성과 의지는 최소한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기에 충분할 정도로 존속되어왔다. 타락한 인간의 묘사에서는 칼빈이 절망적이지만, 인간 이성의 탁월함을 말할 때는 매우 밝은 색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타락과 이성의 탁월성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칼빈은 절망적이고 비참한 인간에게 탁월성의 씨앗을 심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그 모든 학문과 문명의 탁월함은 원저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거기에는 정치, 정책, 기계, 철학, 교양,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등의 분야를 망라한다. 그것이 곧 오늘날 우리가 믿는 일반 은총론의 시작이며, 그 가치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특별한 구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위의 학문 분야들이 구원을 위한 보조도구라고 말한다면 틀린 것이다. 하지만 경탄할만한 인간의 통찰력들을 적그리스도로 거부하는 것은 칼빈의 신학 방법론과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세상 학문의 저자를 칼빈은 하나님이시라 말하기 때문이다. 칼빈의 이러한 태도는 신학에 대한 그의 독특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세상의 여타 학문에 의해 조금도 위협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경탄 가운데 “즐길 수 있었”던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중세 신학자들처럼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세상 학문에 대한 그의 태도는 곧 세상 사람들에 대한 태도로 연결된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 심겨진 이 세상의 불신자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치있는 존재로 인정받아야 한다. 비록 다른 종교를 섬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잘못된 우상숭배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인격은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들의 악한 의도가 아니라 “그들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쳐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대하는 칼빈의 사고와 생각은 이처럼 신중하고 정교하였다.
칼빈은 시종 인간을 타락하게 했던 무절제한 자기 사랑과 반드시 싸워야 한다고 말을 한다. 동시에 인간이 자아를 극심히 비하하는 것 역시 타락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져야 한다(후크마). 칼빈의 말처럼 비록 고난과 어려움과 좌절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하는 선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칼빈 자신은 어떤 인간으로 살았는가? 대개 법에 익숙하거나 성공적인 사람들은 감정이나 감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전형적인 강박증의 특징이다. 칼빈이 비록 다른 신학자들처럼 자신의 사적인 삶에 대해 많이 소개하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파렐이 그의 안식을 저주하며 제네바 사역을 촉구할 때, 그는 심각한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후 부처(Bucer)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얼마나 파렐에게 분노했는지 말하고 있다. 제네바에서 추방될 때 그는 낙심하고 불안에 사로잡혔으며, 스트라스부르그 사역에서는 행복함을 느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쓰라리도록 고통스럽지만, 아직 할 수 있는 한 슬픔을 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슬픔은 특별했다.
물론 그에게는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던 당시의 시대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로 끝나지 않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떤 남성을 대할 때,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를 목회자로서 위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에게는 목회자로서 타인의 슬픔을 위로하는 공감의 능력이 분명히 역사하고 있었다.
천주교의 고해성사와 관련하여, 칼빈은 매우 엄중한 태도를 취한다. 어떤 강제적인 형태로 죄를 고백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금하신 양심을 새로운 결박으로 묶어 노예로 삼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임무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완전히 고백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참된 회개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위선자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제이 아담스(Jay Adams)등의 이론 가운데, 상담을 통해 죄를 고백 받으려는 시도에 경고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의 상담도 개인의 죄를 억지로 고백하게 하는 것은 그 양심을 결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연약성을 노출하는 것은 강제적이고 유도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상호적인 권고와 위로”의(mutual counsel and consolation) 사건이어야 한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말함과 동시에 인간의 학문과 문명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자유를 성령 안에서 누린 개혁자였다. 그는 스스로 고난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난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목회자로서 그는 긍휼의 위로자였으며, 무엇보다 기독교 밖에 있는 일반 학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통찰했던 현대 개혁주의 신학 방법론의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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